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 작업을 위해 성단위에 있는 답답한 코니스를 뜯어버리고, 라파엘로의 스승인 페루지노가 그린 벽화 세 편, 즉 왼쪽의 강에서 건져올린 모세, 오른쪽의 예수님 탄생, 중앙의 성모승천이 가려지도록 천장까지 벽돌을 쌓고 나서 벽화를 그릴 표면을 정리했다.
1536년 4월 드디어 작업이 시작되었다. 교황청 건축가이자 화가로 임명된 그는 바오로 3세가 살아있는 동안 금화 1.200두카트라는 엄청난 연봉을 받게 되었다.
미켈린젤로는 대부분 작업을 혼자 했지만 예외적으로 벽면을 덮은 작업에 벽돌공의 도움을 받았고, 밑그림을 옮기거나 염료를 준비하는 일을 조수에게 맡겼다.
특히 하늘을 표현하는데 사용하려고 페르시아에서 가져온 값비싼 청금석을 빻는 일에 성실한 우르비노의 도움을 받았다.
시스티나 성당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이제 시스티나 성당과 그의 이름은 영원히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성당을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이라고 불렀다.
길이 40미터가 넘는 거대한 천장벽화인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그는 인류의 대서사시를 완성했고, 신과 인간의 약속은 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그림이 전하는 메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은 인간들보다 더 크게 그렸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들과 부활한 육체들이 천사의 영혼들과 다툰다. 수백명의 인물 중에는 단테,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사보나롤라, 루터가 보이고, 그 아래 두건 달린 망토를 뒤집어쓴 프랑스 부르봉 총사령관은 사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여러 교황의 모습도 보인다.
그림이 완성되고 교황이 고위 성직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미켈란젤로의 조수들은 마지막 남은 두꺼운 널판들을 이미 치워놓은 상태였다.
교황은 앞으로 걸어가 주 제단 한가운데 멈춰 서서 눈을 들어 거대한 벽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무릎을 끓었다. 그리고 일어나 몸을 돌려 교황을 따르는 무리들 중에서 미켈란젤로를 찾았다.
그를 발견한 교황은 그에게 다가가서 "나의 아들아, 그대의 작품은 나의 재임 기간의 영광이 될것이다" 라고 말하며 성호를 긋고, 돌아서서 최후의 심판을 향해 더 큰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벽화의 오른쪽 아래 영벌을 받은 사람들의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바티칸 의전장 비아조 다체세나는 격노했다. 미켈란젤로는 세명의 지옥 심판관 가운데 하나인 미노스 형상으로 그를 그려놓았다.
귀가 당나귀처럼 길고, 괴상한 얼굴에 허리를 감싼 뱀이 그의 성기를 집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는 교황에게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교황은 "그가 자네를 연옥에 넣었다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자네는 지옥에 있지 않나? 그러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네" 라고 대답하며 웃어 버렸다.
교황은 공사의 진척 상황을 보려고 혼자 혹은 여러 명의 수행자와 함께 작업장으로 자주 행차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시간을 뺏는 이러한 방문을 싫어했다. 특히 쓸데없는 지적과 엉성한 예술적 충고를 참아내야 했다.
특히 그가 "이 성스러운 장소에 모든 사람이 보도록 나체를 그렸다" 고 분개하는 비아조의 지적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비아조의 태도에 분노한 미켈란젤로는 지옥의 영벌을 받은자들을 실어나르는 뱃사공 카론의 나룻배가 아주 거북한 자세로 벌거벗은 의전장 비아조 추기경을 내세로 실어가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치 우리가 최후의 심판 날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이나 도덕의 상태가 아니라, 바로 차림새라는 듯이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차림새가 일으킨 물의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서 몇 세기 동안 지속됐다.
모두 벗길 것인가, 속옷을 입힐 것인가, 아니면 청바지라도 입게 할 것인가? 수세기가 흐르는 사이에 교회는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했다.
수많은 속옷 중에서 팬티를 택한 것이다.
나폴리의 카포디몬테 미술관에 소장된 1549년의 판화를 보면 최후의 심판 원본이 정확히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있다.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인물이 알몸으로 등장한다.
미켈란젤로는 이러한 당돌함으로 화형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한 육체의 부활을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비방자들에 대한 대답으로 "인간의 발이 신발보다 고귀하고, 육체가 옷보다 고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개한 것들이 무슨 지식인인가? 인간의 아름다움은 위대한 신의 위대함이 낳은 열매이다. 인간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인간의 육체보다 새끼 염소 가죽이나 양털이 우월하다고 널리 알리는 행위와 같다" 고 친구에게 털어 놓았다.